플라스틱은 왜 씻어서 라벨을 떼고 버려야 하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재활용 선별의 대부분이 밀도 차이와 빛의 반사라는 두 가지 물리 현상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내용물이 남아 있으면 무게가 달라져 물에 뜨고 가라앉는 순서가 흐트러지고, 라벨이 붙어 있으면 근적외선 센서가 병 몸체 대신 라벨의 재질을 읽습니다. 환경부 집계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은 102킬로그램, 이 가운데 재활용된 양은 58.1킬로그램으로 재활용률은 57.1퍼센트였습니다. 세계 평균이 9퍼센트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높지만, 그 숫자를 실제로 지탱하는 것은 가정에서의 몇 초짜리 손질입니다.
목차
- 플라스틱은 왜 씻어서 라벨을 떼고 버려야 하나요?
- 선별장 컨베이어 앞에서 본 장면
- 삼각형 안의 숫자는 무엇을 말하나
- 물에 뜨는 플라스틱과 가라앉는 플라스틱
- 근적외선 센서가 놓치는 것들
- 숫자로 읽는 한국의 재활용 현실
- 배출 단계에서 바꿀 수 있는 것
- 자주 묻는 질문
- 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선별장 컨베이어 앞에서 본 장면
연구소가 시민 과학 교육 자료를 만들려고 수도권의 한 재활용 선별장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소음도 냄새도 아니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 위를 흘러가는 것이 우리가 상상하던 "플라스틱 쓰레기"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벨트 위에는 라벨이 반쯤 뜯긴 페트병, 내용물이 남은 요구르트 용기, 배달 용기 안에 그대로 든 소스 봉지, 테이프가 감긴 택배 상자 조각이 뒤섞여 지나갔습니다. 현장 담당자는 벨트 옆에 선 인부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계가 다 하는 줄 아시는데, 앞뒤로 사람이 붙어서 걸러내지 않으면 기계가 오히려 잘못 골라냅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투명 페트병 라인이었습니다. 라벨이 남아 있는 병은 광학 선별기를 통과하는 순간 다른 재질로 판정되어 엉뚱한 통으로 튕겨 나갔습니다. 병 자체는 완벽한 PET인데, 표면에 붙은 얇은 필름 한 장이 판정을 뒤집은 것입니다. 담당자는 "라벨 뗀 병만 모아도 재생원료 등급이 두 단계는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 연구소는 분리배출을 도덕 캠페인이 아니라 측정 조건을 맞춰주는 일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실험실에서 저울 영점을 맞추듯, 선별 기계도 판정 조건이 맞아야 제대로 작동합니다.
삼각형 안의 숫자는 무엇을 말하나
플라스틱 제품 바닥이나 옆면에 찍힌 삼각형 화살표 안의 숫자를 수지 식별 코드라고 부릅니다. 1988년 미국 플라스틱산업협회(SPI)가 자발적 용기 코드 체계로 도입했고, 2008년 이후에는 국제 표준화 기구인 ASTM International이 ASTM D7611 규격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널리 퍼진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이 숫자가 재활용 가능 여부를 뜻한다는 믿음입니다. 표준 문서는 정반대로 못박고 있습니다. 이 기호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재활용되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해서 재활용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숫자는 오직 "무슨 수지로 만들어졌는가"만 알려주는 성분 표시일 뿐입니다. 실제 재활용 여부는 지역 수거 체계, 재생원료 시장 가격, 오염 정도가 함께 결정합니다.
| 코드 | 수지 | 대표 용도 | 선별·재활용 현실 |
|---|---|---|---|
| 1 | PET | 음료병, 식품 용기 | 수거 체계가 가장 잘 갖춰짐 |
| 2 | HDPE | 세제통, 우유병 | 대부분 수거 대상 |
| 3 | PVC | 파이프, 창틀, 일부 포장재 | 재활용량 매우 적음 |
| 4 | LDPE | 비닐봉지, 짜는 튜브 | 가정 수거에서 자주 제외 |
| 5 | PP | 밀폐용기, 배달 용기 | 수거되나 선별 난도 높음 |
| 6 | PS | 일회용 식기, 발포 완충재 | 경제성이 낮아 소각되는 경우 많음 |
| 7 | Other | 복합·특수 수지 | 통상 재활용되지 않음 |
7번 Other가 특히 까다롭습니다. 서로 다른 수지를 층층이 겹쳐 만든 복합 재질이 여기 들어가는데, 성질이 다른 고분자를 다시 분리하려면 화학적 처리가 필요해 비용이 회수 가치를 넘어섭니다. 즉석밥 용기나 진공 포장 필름처럼 산소 차단을 위해 여러 층을 쌓은 포장재가 대표적입니다.
물에 뜨는 플라스틱과 가라앉는 플라스틱
선별장에서 실제로 쓰이는 가장 오래되고 확실한 기술은 물을 이용한 부침분리입니다. 원리는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우는 부력 그대로입니다. 매질보다 밀도가 낮으면 뜨고, 높으면 가라앉습니다.
고분자별 밀도를 실측한 연구 자료를 보면 차이가 꽤 뚜렷합니다. 폴리프로필렌(PP)은 0.910, 고밀도폴리에틸렌(HDPE)은 0.953으로 물의 1.000보다 가볍습니다. 반면 폴리스타이렌(PS)은 1.040, ABS는 1.070, 나일론 계열(PA)은 1.140, 폴리카보네이트(PC)는 1.200으로 물보다 무겁습니다. PET는 약 1.18로 역시 가라앉는 쪽입니다. 그래서 잘게 부순 플라스틱 조각을 수조에 넣으면 PP와 HDPE는 위로 떠오르고 PET, PS, ABS는 바닥에 쌓입니다. 같은 연구에서 수돗물만으로 PP와 HDPE 혼합물을 걸러낸 회수율은 97.5퍼센트였습니다.
문제는 뜨는 것끼리, 가라앉는 것끼리는 이 방법으로 갈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PP와 HDPE는 둘 다 뜨니 서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매질의 밀도 자체를 바꾸는 방법을 씁니다. 에탄올을 23에서 31퍼센트 섞어 밀도를 0.935 정도로 낮추면 PP만 뜨고 HDPE는 가라앉습니다. 이 조건에서 PP 회수율은 99.7퍼센트, HDPE는 96퍼센트까지 올라갔습니다. 반대로 소금물 농도를 높여 매질 밀도를 1.055, 1.100, 1.175로 단계별로 올리면 PS, ABS, PA와 PC를 차례로 분리할수 있습니다. 소금 농도 40퍼센트 조건에서 폴리카보네이트 회수율은 95.4퍼센트였습니다.
여기서 왜 세척이 중요한지 자연히 설명됩니다. 용기 안에 남은 음식물이나 기름은 조각의 실효 밀도를 바꿔놓습니다. 떠야 할 조각이 가라앉고 가라앉아야 할 조각에 기포가 붙어 뜨는 순간, 정교하게 맞춰둔 밀도 경계가 무의미해집니다. 헹구는 행위는 청결의 문제가 아니라 물성을 원래대로 되돌려주는 실험 준비인 셈입니다.
근적외선 센서가 놓치는 것들
밀도만으로는 갈라지지 않는 재질을 위해 요즘 선별장은 근적외선 광학 선별기를 함께 씁니다. 고분자마다 분자 결합 구조가 달라 특정 파장의 적외선을 흡수하는 패턴이 다른데, 이 스펙트럼 지문을 읽어 재질을 판별하고 압축공기로 튕겨 분류하는 방식입니다.
빠르고 정확하지만 두 가지 한계가 분명합니다. 첫째, 센서는 표면만 봅니다. 라벨이 덮여 있으면 병이 아니라 라벨의 스펙트럼을 읽습니다. 투명 페트병에서 라벨 제거가 유독 강조되는 기술적 이유가 이것입니다. 둘째, 검은색 플라스틱을 거의 읽지 못합니다. 흔히 쓰이는 카본블랙 안료가 근적외선을 대부분 흡수해버려 반사 신호 자체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검은 배달 용기나 검은 화장품 용기가 재질과 무관하게 잔재물로 빠지는 일이 잦은 것은 이 때문입나다.
색깔이 들어간 페트병이 투명 페트병과 따로 관리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색소는 한 번 들어가면 빼내기 어려워, 재생 원료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의 범위가 좁아집니다. 투명한 병에서 나온 재생 원료라야 다시 투명한 병으로 돌아가는 이른바 보틀 투 보틀 순환이 가능해집니다.
숫자로 읽는 한국의 재활용 현실
환경부 자료 기준으로 2022년 우리나라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연 102킬로그램이었습니다. 500밀리리터 생수병으로 환산하면 한 사람이 한 해에 8,500개가량을 버린 셈입니다. 이 가운데 재활용된 양은 58.1킬로그램, 비율로는 57.1퍼센트였습니다. OECD가 집계한 2019년 세계 평균 재활용률 9퍼센트, 매립 약 절반, 소각 19퍼센트라는 수치와 비교하면 한국의 수치는 확실히 높은 편입니다.
다만 이 숫자를 읽을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재활용률 통계에는 소각을 통한 열 회수가 포함되는 경우가 있어, 물질 그대로 다시 제품이 되는 물질 재활용 비율은 이보다 상당히 낮습니다. 환경 단체들이 "재활용률 78퍼센트라고 하지만 실제로 다시 페트병으로 돌아가는 고품질 재생 플라스틱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고 지적하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투명 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제는 2020년 의무관리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시작해 2021년 단독주택을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습니다. 2021년 기준 투명 페트병 재활용률은 76.9퍼센트, 유색 단일 재질 페트병은 79.7퍼센트로 집계됐습니다. 제도는 자리를 잡았지만, 수거 단계에서 다른 플라스틱이나 오염물과 섞여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것이 현장의 평가입니다.
배출 단계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원리를 알고 나면 배출 요령이 규칙 암기가 아니라 이유 있는 절차로 보입니다. 네 단계면 충분합니다.
첫째, 비웁니다. 내용물이 남으면 밀도가 달라지고 다른 재활용품까지 오염시킵니다. 둘째, 헹굽니다. 기름기나 양념이 붙어 있으면 부침분리 단계에서 판정이 흔들립니다. 물로 한 번 흔들어 붓는 정도면 충분하고, 세제를 쓰거나 뜨거운 물을 쓸필요는 없습니다. 셋째, 분리합니다. 라벨, 뚜껑 링, 펌프 부품처럼 재질이 다른 부분을 떼어냅니다. 라벨은 광학 선별기의 시야를 가리고, 금속 스프링이 든 펌프는 파쇄기에 손상을 줍니다. 넷째, 섞지 않습니다. 투명 페트병은 반드시 별도로 모으고, 다른 플라스틱과 한 봉투에 담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한다면 배출하기 전에 잠깐 재질 표시를 확인하는 습관입니다. 7번이나 표시가 아예 없는 복합 재질은 재활용 공정에 들어가도 대부분 잔재물로 빠집니다. 이런 품목은 재활용품으로 배출하기보다 종량제 봉투로 보내는 편이 전체 선별 품질에는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재활용이 될것 같은 물건을 일단 넣고 보는 습관, 이른바 희망적 배출은 선별 라인의 오염률을 높이는 대표적 원인으로 꼽힙니다.
| 손질 단계 | 과학적 이유 | 생략했을 때 |
|---|---|---|
| 내용물 비우기 | 조각의 실효 밀도 유지 | 부침분리 판정 오류 |
| 물로 헹구기 | 표면 유분·잔여물 제거 | 재생원료 등급 하락 |
| 라벨 제거 | 근적외선 반사면 확보 | 다른 재질로 오판 |
| 재질별 분리 | 단일 수지 순도 확보 | 혼합 수지로 물성 저하 |
자주 묻는 질문
플라스틱 용기를 꼭 물로 헹궈야 하나요?
가볍게라도 헹구는 편이 좋습니다. 선별 공정의 핵심인 부침분리는 조각의 밀도가 원래 수지의 밀도와 같다는 전제로 작동합니다. 안에 남은 음식물이나 기름은 이 전제를 깨뜨려 뜨고 가라앉는 순서를 바꿔놓습니다. 다만 세제를 쓰거나 뜨거운 물을 오래 흘릴 필요는 없습니다. 남은 물로 한 번 흔들어 붓는 정도면 충분하며, 물을 아끼려는 목적이라면 설거지 마지막 헹굼물을 활용해도 됩니다.
삼각형 안의 숫자가 크면 재활용이 잘 되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 숫자는 재활용 난이도나 우수성 순위가 아니라 어떤 수지로 만들었는지를 표시하는 성분 기호입니다. 1988년 미국 플라스틱산업협회가 도입할 때부터 성분 식별이 목적이었고, 현재 ASTM D7611 표준도 이 기호가 재활용 가능 여부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실제 재활용 여부는 지역 수거 체계와 재생원료 시장, 오염 정도가 함께 결정합니다.
검은색 플라스틱 용기는 왜 재활용이 어렵나요?
광학 선별기가 재질을 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별기는 근적외선을 쏘아 되돌아오는 스펙트럼으로 수지를 판별하는데, 검은색을 내는 카본블랙 안료가 근적외선을 거의 다 흡수해 반사 신호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재질이 PP든 PET든 센서에는 "읽히지 않는 물체"로 남아 잔재물로 빠집니다. 최근에는 근적외선을 반사하는 대체 안료를 쓴 포장재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 널리 쓰이지는 않습니다.
투명 페트병만 따로 모으라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색소는 재생 과정에서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색이 들어간 병이 섞이면 재생 원료 전체가 탁해져 다시 음료병으로 쓰기 어려워지고, 섬유나 저부가가치 제품으로만 활용됩니다. 투명한 병에서 나온 원료라야 다시 투명한 병이 되는 순환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2020년 공동주택을 시작으로 2021년 전국으로 별도 배출 제도를 확대했고, 2021년 기준 투명 페트병 재활용률은 76.9퍼센트로 집계됐습니다.
재활용될지 애매한 물건은 일단 재활용품으로 내는 게 낫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애매한 품목을 일단 넣고 보는 이른바 희망적 배출은 선별 라인의 오염률을 높여 정상 재활용품의 등급까지 떨어뜨립니다. 특히 7번 Other로 표시된 복합 재질이나 표시가 아예 없는 소재는 여러 수지를 겹쳐 만든 경우가 많아 현재 기술로는 분리가 어렵습니다. 이런 품목은 종량제 봉투로 배출하는 편이 전체 선별 품질에는 유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