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하려면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요?
출발점은 어휘를 쉬운 말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 연습입니다. 1990년 스탠퍼드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노래 리듬을 손가락으로 두드린 사람들은 상대가 절반쯤은 맞힐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정답률은 2.5%였습니다. 120곡 중 3곡만 전달된 셈입니다. 머릿속에 멜로디가 흐르는 사람에게는 그 리듬이 명백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그저 두드리는 소리일 뿐입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이유의 대부분이 여기서 나옵니다.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식이 있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목차
- 중학생 앞에서 열전도율을 설명하다 실패한 날
- 지식의 저주는 어떻게 작동하나요
-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세 가지 모형
- 비유는 어디까지 유효한가요
- 숫자와 그래프는 왜 더 자주 오해되나요
- 설명을 점검하는 도구, 파인만 기법
- 과학을 설명하는 4단계 실전 절차
- FAQ
- 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중학생 앞에서 열전도율을 설명하다 실패한 날
지역 과학관의 청소년 프로그램에서 단열을 주제로 40분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준비는 충실했다고 생각햇습니다. 전도·대류·복사를 정의하고, 열전도율의 단위인 W/m·K를 설명하고, 재료별 수치를 표로 정리했습니다. 15분쯤 지나자 앞줄 학생 몇 명의 눈이 풀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당황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겨울에 쇠 손잡이가 나무 손잡이보다 차갑게 느껴질까요?" 한 학생이 답했습니다. "쇠가 더 차가우니까요." 이 대답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둘의 온도는 같고 손에서 열을 빼앗아 가는 속도가 다를 뿐이라는 것이 그날 수업의 핵심이었는데, 15분 동안 설명한 내용이 학생의 직관을 조금도 흔들지 못한 겁니다.
남은 25분은 계획을 버리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알루미늄 판과 나무 도마, 스티로폼 조각을 같은 방에 30분 두었다가 만져 보게 했습니다. 세 재료의 온도가 같다는 것을 온도계로 확인시킨 뒤 다시 만지게 했더니, 그제야 "온도가 같은데 왜 다르게 느껴지지"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 질문이 나온 뒤부터는 열전도율이라는 단어를 써도 알아들었습니다.
이 경험이 알려 준 것은 명확합니다. 정의를 먼저 주면 이해가 늦어진다는 것입니다. 설명은 지식의 순서가 아니라 궁금증의 순서를 따라야 합니다.
지식의 저주는 어떻게 작동하나요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는 무언가를 알게 된 뒤에는 모르던 상태를 상상하지 못하게 되는 인지 편향입니다. 앞서 언급한 1990년 엘리자베스 뉴턴의 두드리기 실험이 고전적인 증거로 인용됩니다.
실험 설계는 단순했습니다. 참가자를 두드리는 사람과 듣는 사람으로 나누고, 두드리는 사람은 생일 축하 노래처럼 누구나 아는 곡 25개 중 하나를 골라 리듬만 손가락으로 두드립니다. 결과는 이랬습니다.
| 항목 | 수치 |
|---|---|
| 두드린 곡 수 | 120곡 |
| 두드린 사람의 예상 정답률 | 약 50% |
| 실제 정답률 | 2.5% (3곡) |
| 예상과 실제의 격차 | 20배 |
두드리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멜로디가 완전한 형태로 흐릅니다. 그 상태에서는 상대가 못 맞힌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전문가가 자기 분야를 설명할 때 정확히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전문가의 머릿속에는 개념 사이의 연결망이 이미 깔려 있고, 그 연결망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같은 단어가 낱개의 소음으로 들립니다.
이 편향이 특히 위험한 지점은 피드백을 오독하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청중이 고개를 끄덕이면 이해했다고 판단하지만, 실제로는 모르겠다고 말하기 민망해서 끄덕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해도를 확인하려면 끄덕임이 아니라 되말하기를 요구해야 합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세 가지 모형
학계에서는 과학과 대중의 관계를 설명하는 모형을 크게 셋으로 구분합니다. 어떤 모형을 전제하느냐에 따라 설명 방식 자체가 달라집니다.
결핍 모형(deficit model). 대중에게 과학 지식이 부족하니 전문가가 채워 주면 된다는 관점입니다. 지식을 한 방향으로 전달하는 구조이며, 오랫동안 과학 대중화의 기본 전제였습니다. 문제는 이 모형이 이해 부족을 대중의 결함으로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백신이나 원자력 같은 쟁점에서 정보를 더 준다고 태도가 바뀌지 않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대화 모형(dialogue model). 맥락 모형이라고도 부릅니다. 사람들이 과학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자신의 경험과 이해관계라는 맥락에 좌우된다고 봅니다. 같은 미세먼지 데이터라도 천식 아이를 둔 부모와 소상공인이 다르게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전제합니다. 설명하는 쪽이 듣는 쪽의 맥락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참여 모형(participation model). 대중을 정보 수용자가 아니라 지식 생산의 참여자로 봅니다.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대표적인데, 시민이 관측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연구에 기여하는 구조입니다. 이 모형에서는 설명이 목적이 아니라 협업의 수단이 됩니다.
세 모형은 우열 관계가 아니라 상황에 따른 선택지입니다. 감염병 유행 중 방역 수칙을 알릴 때는 결핍 모형에 가까운 일방 전달이 효율적이고, 지역 소각장 입지처럼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서는 참여 모형이 아니면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어느 상황에서나 결핍 모형만 쓰는 관행입니다.
비유는 어디까지 유효한가요
과학 설명의 핵심 도구는 비유입니다. 그런대 비유는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익숙한 것에 빗대면 이해가 빨라지지만, 빗댄 대상의 성질까지 함께 넘어오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사례가 원자 모형입니다.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도는 태양계 그림은 100년 넘게 쓰였지만, 이 비유를 받아들인 학생은 전자가 정해진 궤도를 따라 공전한다고 믿게 됩니다. 실제 전자는 확률 분포로 존재하며 궤도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중에 양자역학을 배울 때 이 학생은 새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배운 것을 지워야 합니다.
좋은 비유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춥니다.
- 듣는 사람이 직접 경험한 것에 빗댈 것
- 설명하려는 성질과 대응 관계가 명확할 것
- 비유가 어디서 깨지는지를 함께 말할 것
세 번째 조건이 가장 자주 생략됩니다. "전자는 태양계 행성처럼 돕니다. 다만 궤도가 아니라 확률적으로 퍼져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라고 한 문장을 덧붙이면 오개념의 상당 부분을 막을수 있습니다. 앞서 열전도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열을 물의 흐름에 빗대되 물처럼 담아 둘 수 없다는 점을 짚어야 했습니다.
숫자와 그래프는 왜 더 자주 오해되나요
과학 설명에서 숫자는 신뢰의 근거로 쓰이지만, 동시에 가장 자주 왜곡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유는 사람이 숫자를 절대량이 아니라 비교 대상과의 관계로 읽기 때문입니다.
가장 흔한 함정이 상대위험도와 절대위험도의 혼동입니다. 어떤 습관이 특정 질병 위험을 50% 높인다는 문장은 위협적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원래 위험이 10만 명당 2명이었다면 50% 증가는 10만 명당 3명이 된다는 뜻입니다. 두 표현 모두 사실이지만 받아들이는 크기는 전혀 다릅니다. 설명하는 쪽이 어느 표현을 고르느냐에 따라 같은 연구가 경고문도 되고 참고사항도 됩니다. 그래서 위험을 다룰 때는 기저 발생률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프도 마찬가지입니다. y축을 0에서 시작하지 않고 잘라 내면 미세한 변화가 절벽처럼 보입니다. 축의 구간을 넓히거나 좁히는 것만으로 같은 데이터가 급증으로도 정체로도 보입니다. 이런 조작이 의도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그래프를 그리는 사람이 자기 눈에 중요한 구간을 확대하다가 벌어지는 일입니다. 지식의 저주가 시각화에서 나타나는 형태입니다.
숫자를 다룰 때 권장되는 세 가지 습관이 있습니다. 첫째, 비율을 말할 때는 분모를 함께 말합니다. 둘째, 평균을 말할 때는 분포의 폭도 함께 언급합니다. 평균 수명 83세라는 문장보다 대부분이 75~90세 사이에 분포한다는 문장이 훨씬 정확한 그림을 만듭니다. 셋째, 단위를 일상 감각으로 환산해 줍니다. 1테라와트시라는 표현보다 4인 가구 30만 세대가 1년 동안 쓰는 전력이라는 표현이 전달됩니다.
설명을 점검하는 도구, 파인만 기법
리처드 파인만은 복잡한 물리 개념을 일상어로 옮기는 데 뛰어났던 물리학자였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학습법은 원래 자기 이해를 점검하는 방법이지만, 설명 자료를 검토하는 데도 그대로 쓰입니다.
절차는 네 단계입니다. 첫째, 개념 이름을 종이 맨 위에 적습니다. 둘째, 전문 용어를 쓰지 않고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설명하듯 적습니다. 셋째, 막히거나 얼버무리게 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넷째, 그 지점만 다시 공부한 뒤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핵심은 세 번째 단계입니다. 말로 할 때는 그럴듯하게 넘어가지던 부분이 글로 쓰면 반드시 걸립니다. 실제로 열전도 수업 자료를 이 방식으로 다시 쓰다가, 제가 온도와 열을 구분하지 않고 섞어 쓰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학생들이 "쇠가 더 차갑다"고 답한 이유가 제 설명 안에 이미 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파인만 기법이 강력한 이유는 지식의 저주를 구조적으로 우회하기 때문입니다. 이해했는지 스스로 판단하는 대신, 설명이 막히는가라는 관찰 가능한 신호로 바꿔 놓습니다. 자기 평가를 신뢰하지 않는 설계입니다.
과학을 설명하는 4단계 실전 절차
1단계 — 상대의 오개념부터 확인합니다. 설명을 시작하기 전에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쇠 손잡이가 왜 차갑게 느껴질까요" 같은 질문이면 충분합니다. 상대가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면 어디로 데려갈지 정할수 없습니다.
2단계 — 현상을 먼저, 이름을 나중에 붙입니다. 열전도율이라는 단어는 학생이 온도가 같은데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에 놀란 뒤에 등장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정의부터 주면 그 단어를 외울 뿐 현상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3단계 — 비유를 쓰고 곧바로 한계를 밝힙니다. 좋은 비유 하나와 그 비유가 깨지는 지점 한 문장을 세트로 준비합니다. 세트가 아니면 나중에 오개념을 걷어내는 데 더 큰 비용이 듭니다.
4단계 — 되말하기로 확인합니다. "이해되셨나요"라고 묻지 않습니다. "지금 설명한 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실제 이해도이며, 앞서 소개한 두드리기 실험의 함정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FAQ
전문 용어는 아예 쓰지 말아야 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용어를 없애면 정확도가 떨어지고 나중에 스스로 찾아볼 열쇠도 사라집니다. 권장되는 순서는 현상 → 감각적 설명 → 용어 부여입니다. 용어를 마지막에 붙이면 그 단어가 이미 경험한 무언가의 이름이 되므로 기억에 남습니다.어린이에게 설명할 때와 성인에게 설명할 때는 무엇이 다른가요?
어휘 수준보다 배경 경험의 종류가 다릅니다. 어린이는 추상적 비유보다 직접 만지고 관찰한 경험에 빗댈 때 훨씬 잘 이해합니다. 성인은 업무나 생활에서 겪은 사례에 연결할 때 효과적입니다. 같은 개념이라도 상대가 이미 가진 경험 목록에서 재료를 골라야 한다는 원칙은 동일합니다.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어디서 배울수 있나요?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과학문화 전문인력 양성 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일부 대학의 과학기술학·과학저널리즘 과정에서도 다룹니다. 다만 가장 효과적인 훈련은 실제로 설명해 보고 어디서 막히는지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과학관 자원봉사나 시민과학 프로젝트의 안내 활동이 실전 연습장이 됩니다.틀린 정보를 바로잡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틀린 주장을 반복해서 반박하면 오히려 그 주장이 각인되는 역효과가 보고돼 있습니다. 권장되는 방식은 사실을 먼저 제시하고, 틀린 주장은 짧게 언급하되, 왜 그런 오해가 생겼는지 설명한 뒤, 다시 사실로 마무리하는 구조입니다. 오해의 이유를 다루지 않으면 사실만으로는 설득되지 않습니다.설명이 길어지는 걸 어떻게 줄이나요?
설명이 길어지는 대부분의 원인은 예외 처리입니다. 정확성을 지키려고 단서를 계속 붙이다 보면 핵심이 묻힙니다. 첫 설명에서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관계만 남기고 예외는 의도적으로 생략한 뒤, 상대가 질문하면 그때 추가하는 편이 낫습니다. 처음부터 완전한 설명을 목표로 하면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습니다.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출처
- Cursed by knowledge (The Psychologist, British Psychological Society)(Article)
- Brain Lessons: 'Tappers' and the Curse of Knowledge (Temple University Beasley School of Law)(Article)
- Models of Science Communication in Society: Deficit, Dialogue, Participation(ScholarlyArticle)
- 협업의 관점에서 바라본 정부주도 과학문화 사업의 한계와 대안(ScholarlyArticle)
- 과학문화 전문인력 플랫폼 (한국과학창의재단)